"러시아인은 시들어가는 경제를 목격한다"는 막말의 정치학은
"러시아인은 시들어가는 경제를 목격한다"는 막말의 정치학은
  • 이진희
  • jinhlee@hk.co.kr
  • 승인 2009.07.29 06: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구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말했던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그의 말처럼 '악의 제국'은 붕괴되고 말았지만, 레이건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한다.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 미국이 '말로' 다시 러시아를 궁지로 내몰고 있다. 이번에는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다. 엊그제 러시아를 방문한 고위정치인이다.

그는 지난 25일 월스트리트저널 1면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러시아인들은 시들어 가는 경제를 목격한다. 러시아의 금융구조는 앞으로 15년을 견뎌낼지 의심스럽고, 모든 나라가 변하는데 러시아만 지속될 수 없는 과거에 매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이달 초 미국과 러시아가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1) 후속 협정 초안에 합의한 배경과 관련, "그들(러시아)이 갑자기 깨달음을 얻어 (이웃 국가에) '어이, 우린 더 이상 우리 이웃을 괴롭히지 않기로 했어'라고 말한 걸까. 그들은 단지 (현재 경제력으로는 핵무기를) 유지할 수 없었던 것뿐"이라고 평가했다.

이렇게 바이든 부통령이 러시아 현실을 직설적으로 꼬집자 러시아가 잔뜩 흥분하고 있다. 미국도 지난해 가을 리먼 브라더스 파산에 따른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은 이제 망했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런 비난에 앙갚음이나 하듯이 러시아를 향해 "러시아는 이제 끝났다"고 발언하고 있다.

불과 3주 전 러시아와 정상회담을 갖고 '관계 재설정(reset)' 외교에 불을 지피는 오바마 행정부를 매우 곤혹스럽게 만든 발언이었다.

러시아는 당장 불쾌감을 표시했다. 크렘린의 세르게이 프리호드코 외교정책보좌관은 "오바마 외교팀 내에서도 대통령의 외교 노선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인지, 러시아는 알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일간지 코메르산트는 "바이든 부통령이 전 부시 정권의 레토릭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다"고 27일 보도했다. 레이건 전대통령이나 부시 전대통령 등 공화당 출신 대통령들은 러시아를 가상 적대국으로 보고, 붕괴를 목표로 삼았지만, 클린턴 전대통령 등 민주당 출신들은 '평화공존'에 외교의 큰 비중을 둬왔다. 그런데, 민주당 출신에, 흑인출신인 오바마 정권에서 이런 표현들이 공공연하게 흘러나온다는 게 양국에 다 곤혹스런 것이다.

파문이 커지자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미국은 러시아를 강대국으로 생각하며, 부강하기를 원한다"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도 "미국의 대통령과 부통령은 국익을 위해 서로 협력하리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